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 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갔네 / 박남준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대궐이라더니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간밤을 설렜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잔인하구나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아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가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사람들과 뽕작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번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 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연두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은 섬진강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가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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