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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연암토굴 도현 스님

유익한 이야기

by ^^지니 2013. 12. 2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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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연암토굴 도현 스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나’
사랑하며 자긍심 가져라!
 
법보신문 : 1100 호 / 발행일 : 2010-06-15

15세 출가 후 46년 수행 한 길
해제 때면 ‘선재난야’ 정법지도

세 평 토굴서 17년간 수행 정진
파초·다람쥐·새·달·별이 도반

 

 

▲ 하동 연암토굴 도현 스님

 


2010년 1월 ‘조용한 행복’(뜰 출판)이라는 책 한권이 세상에 나왔다. ‘조용한 행복’은 적멸위락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라는 상념이 드는 순간 부제에 눈길이 꽂혔다. ‘세 평짜리 오두막 수행자가 보내는 산중편지!’


첫 장을 열자 도현 스님의 짧은 이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열다섯 나이에 덕명 스님을 은사로 범어사에서 출가했고, 쌍계사 금당선원 선덕을 지낸 것 외에 승려생활 45년 동안 선방과 산속을 오가며 수행한 스님이었다. 5년 동안 태국에서 위빠사나 수행법도 공부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흔히 말하는 요직을 맡지 않고, 선과 위빠사나를 수행했다하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첫 글에 경봉 스님을 찾았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중노릇을 잘 할 수 있습니까?”
“중노릇 잘 할라믄 한 생, 안 난 요량해뿌라!”
도현 스님의 사족이 이어졌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한 것은 스님께서 일러주신 법문이 나의 정곡을, 마음의 핵심을 찔러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한 생, 안 난 요량해라. 말인즉 쉽지만 정말 한 세상 안 난 셈치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해야만 하고, 무엇인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도현 스님만의 의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도 품고 있는 의문 아닌가. 첫 장을 보는 순간부터 연암토굴로 달려가려 했지만 인연은 오늘에야 닿았다. 복이 모자란 탓이다. 쌍계사를 지나 화개 끝자락까지 가니 마지막 마을 ‘의신마을’이 보였다. 토굴은 이 마을 끝 산턱에 자리 잡고 있다. 박라연 시인의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나,/ 이런 길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을 손잡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도 그도 정갈한 영혼을 지닐 것 같아/ 이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처럼/ 이 길을 오고 가는 자동차의 탄력처럼/ 나 아직도 갈 곳이 있고 가서 씨 뿌릴 여유가 있어/ 튀어오르거나 스며들 힘과 여운이 있어/ 나 이 길을 따라 쭈욱 가서/ 이 길의 첫 무늬가 보일락말락한 / 그렇게 아득한 크트머리쯤의 집을 세내어 살고 싶네…생략’


박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절망이 사철 내내 내 몸을 적셔도 햇살을 아끼어 잎을 틔우고 뼈만 남은 내 마음에 다시 살이 오르면 그 마음 둥글게 말아 둥그런 얼굴 하나 빚겠네’라 했다. 연암토굴에서는 무엇이 빚어지고 있을까.
마지막 산길마저 끝내고 나니 연암토굴이 다소곳이 얼굴을 내민다. 책에서 본 정경보다 더 정갈했다. 작은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스님은 이 못에 작은 종이 배 하나 띄우면 그대로 강이요, 바다라 했다. 파초 잎도 무성하다. 불일암 좌선 때 넓은 파초 잎에 후두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좋아 연암에도 심었다고 했다. 남방불교에서는 파초의 속이 없는 것을 놓고 “인연으로 이루어진 몸이여,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은 마치 파초와 같아라”라는 무아법문의 비유로 많이 쓴다고 한다. 스님도 파초를 ‘도반’으로 삼고 있다.


호롱불 하나 켜 놓은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차를 내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리산 자락이 힘차게 펼쳐져 있다.


“한 찰나도 쉬지 않고 멋진 동영상을 보여 주는 대형 스크린입니다.” 세 평의 토굴 창문에 투영된 자연의 오묘함과 무상을 말하고 있음이라. 도현 스님은 벌써 이 토굴에서 17년을 보내고 있다. 의신마을로 들어선 지는 20년도 더 됐다. 처음엔 마을 한적한 곳에서 지내며 정진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산과 계곡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은둔과 소요를 동경했기에 15세 때 출가한 스님. 마을의 북적거림을 편케만 흘려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텐트’속 생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내고 보니 이내 토굴이 자리하게 됐다. 마을 사람들과 나무, 돌을 나르며 직접 지었다. 딱 하나. 저 창문 하나만 세간에서 맞춰 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 그대로 마시고, 나무 한 짐 해와 군불 때고, 가부좌 틀었다가 푼 후에 차 한 잔 마시는 게 하루 일상사다.
“토굴에 오신 분들에게 묻습니다. 저 작은 의자 왜 있는 지….”
마당 끝에 놓인 의자 하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책 속에서 간혹 본 등받이 없는 목조의자다. 지금은 그 의자에 돌 하나 얹혀 있다. 속으로 ‘돌 치워 놓고 그냥 앉을까?’하는데 일언이 떨어졌다.


“선문답 하자는 게 아닙니다. 말의 시작을 하기 위함입니다.”
상대를 재량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자 하나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눠 보자는 뜻이다. 섣부른 재단이 재앙을 부른 셈이다.


“저 앞에 펼쳐진 산과 계곡은 제 것도 기자님 것도 아니지만, 제 것이기도 하고 기자님 것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돌이 앉아 있으니 저 의자에서 바라본 풍경은 몽땅 ‘돌 것’이다.
“소동파도 ‘계곡 물소리는 모두 부처님 법’이라 했지 않습니까? 여행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게 우리 불법입니다.”
산길을 오르며 물음 하나를 가졌다. 어떤 힘이 스님을 이 토굴에 머물게 하는가? 이 힘이 무엇인지 알면 세속을 지탱하는 힘도 될 것이고, 산으로 들어오는 힘도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세속을 관통하는 고차원적인 에너지다.
“저라고 해서 특별한 힘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쪽을 볼 수 있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인식의 전환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스님은 대만 불광사 중대선사 순례 중 본 회두차안(回頭此岸)을 들어 보였다.
“이 쪽으로 머리를 한 번 돌려보라는 말입니다. ‘이 쪽과 저 쪽이 둘이 아니지만 우리는 저 쪽만 보고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욕에 집착한 삶만을 현실이라 보고 매어 사는 것이지요. 다른 쪽을 한 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도시 문명사회에서 사는 분들에게 자연 쪽으로 한 번 고개를 돌려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왜 마당에 의자가 있었는지 알았다. 사람만 보지 말고 저 웅장한 산에, 자연에 눈길 한 번 주어 보라는 뜻이었다. 그 속에 담긴 순수와 이치를 느끼고 체득해 보라는 뜻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서만 순수와 생의 도리를 깨우칠 수 있는 것일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서도 충분합니다.”

 

‘자연으로 고개 한 번 돌려보라
‘무상·무아의 숭고한 법문 가득

‘객사 각오 구도심 챙겨야 ‘중 삶’
‘자신’ 살필수록 正道에너지 충만

 

 

▲ 마당 끝자락에 놓인 나무의자에 돌이 앉아있다.

 


도현 스님은 현법낙주(現法樂住)라는 다소 생소한 법을 꺼내 들었다.


“간단합니다. 지금 머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존중해 주면 됩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자신을 비하할 때도 있고,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 못난이로 만들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이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참으로 귀하고 고유한 존재입니다. 단지 서로의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저는 스님의 역할을, 당신은 기자의 역할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누가 더 고귀한 것인지는 따질 게 못 됩니다. 자신을 우주 중심에 두고 긍지를 가지며 사랑해야 합니다. 멋진 그림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바로 자신입니다.”
그렇다. 내가 없다면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을 가지라 한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다 보면 나는 순간순간 변하는 존재요, 고와 낙을 엇바꾸어 수용하는 존재로서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자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실감하면 실감할수록 ‘생은 덧없으니 부지런히 살펴라’는 메시지가 들려오고, 자신을 살피면 살필수록 바른 삶을 살아갈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어있는 삶 그 자체로서 자신을 체득하게 되는 겁니다.”


마당에 놓인 의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 우리는 마음 한구석에 의자를 두고도 앉지를 못했다. 앉으면 그만인 줄 알면서도 세속 잣대의 성공과 명예에 이끌려 앉기를 두려워했다. 계곡의 물 한 줄기도 법음처럼 들리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도현 스님은 선열 속에서 살고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토굴이 무척이나 불편할 것 같지만 도현 스님에게는 하늘에 뜬 별을 빨리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결제철에는 선원으로 발길을 향하고, 해제가 되면 연암토굴로 발길을 돌리며 소수인원이지만 마을에 마련된 수행터 ‘선재난야’를 찾는 사람들에게 법을 폈다. 도현 스님이 거느린 대중은 비단 사람뿐이 아니었다. 다람쥐, 도토리, 파초, 나무, 해와 달 등 자연일체가 대중이요 도반이었던 셈이다.


“지게 지고 나무 두어 짐 하다가 소나무 숲 아래 푸석한 갈비 위에 퍼질러 앉아서 먼 산 바라보고 맑은 공기 마시며 슬금슬금 톱질하는 것이 내 초막생활의 소요입니다. 그럼에도 간혹 뜰에 밀려오는 산그늘이 눈에 밟힙니다. 또 한 해가 저무는 구나! 하거든요. 감회도 있지만 하루하루 후회할 일을 남기지 말자는 다짐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한세상 살아가면서 잘 산다 못 산다 한들 그 언젠가 버리고 갈 것입니다. 이 산중에서 걱정 없이 산다 해도 그 인연이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삶입니다.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자체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내 짧은 인생이 너무 아까울 겁니다.”


법랍 46년의 도현 스님도 정진의 정진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실마리가 풀려진다. 머리 한 번 돌리고, 방석 위에 앉는 일이 어디 출세간에만 있겠는가.
“임제록에 ‘달팽이는 길을 가면서도 집을 지고 다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더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도현 스님은 연암토굴에서 17년을 보내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사는 절대 현재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삶 즉, 소유의 삶이 아닌 존재의 삶을 말하고 있음이다. 오래 전에 모시고 살던 노스님 한 분이 말씀하신 일언을 스님은 지금도 가슴에 담고 있다.
“어느 봄날 걸망 지고 시골길을 가다가 힘이 들어 논두렁에 기대어 죽어진다 하더라도 언제나 진실해지려고 하는 구도심 하나 꼭 챙기고 죽는다면 비록 남이 그대를 보고 객사 했다 할지라도 중노릇은 참 잘 한 것이네.”
도현 스님은 “중은 그래야 한다”며 다시 한 번 창밖을 내다보았다. 도현 스님은 ‘법구경’의 일언처럼 깨침의 큰 즐거움을 바라며 작은 즐거움을 버리고 있는 듯했다.


도현 스님이 전한 백거이의 시 한 수가 시원하다.
‘달팽이 뿔만 한 세상에서 무엇을 다투느냐./ 부싯돌 부딪쳐 반짝하는 순간/ 잘살아도 고만 못 살아도 행복/ 왜 훤출하게 웃지 못하고 고민하는가.’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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