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각 기억하시는지...
샘터사 건물앞 조각입니다.
작지만 알찬 잡지 샘터
1970년 3월
맑고 깨끗한 샘터로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거라고
우암 김재순선생이 창간하며 다짐한 말입니다.
샘터 6월호 목차를 보니
특집 ' ()() 없이 살아 봤다' 눈길을 끕니다.
난 뭐 없이 살아 봤을까...
스스로 물어 보았습니다.
..................
<아래글은 고연이란 분이 쓴 글이 마음에 와 닿아 옮겨 봅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요.
있어서 좋은 줄을 몰랐던 것들이 없어지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돈도, 밥도, 이웃도, 심지어는 솥뚜껑 하나까지도 말이에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요.
결핍의 시기를 이기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회고록. 여기에 있습니다.
쇼핑 없이 살아봤다
몇 년 전에 냉장고를 하나 샀다.
친구가 버린다기에 냉큼 주워 온 냉장고를 10년 동안 잘 썼지만 물이 새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54만 원짜리 자그마한 새 냉장고로 바꿔야 했다.
우리 집의 세 번째 냉장고이자 처음 산 냉장고, 첫 번째 냉장고도 역시 얻은 것이었다.
신혼집에 와서 냉장고 곰팡이를 닦아준 엄마는 속이 상해 울었다지만 나는 빈손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정말 빈손이었다. 결혼식장은 아버지 친구가 일하는 건물을 공짜로 빌렸고,
피로연은 구내식당이었으며, 예단은 내가 다니던 이불 공장 사장님이 선물한 이불 30채로 해결했다.
심지어 신혼여행 숙소도 공짜였다. 제주도에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온 부부를 만났는데,
둘이서만 놀기 심심하다며 같이 놀자고 자신들의 숙소로 초대해 재워줬기 때문이다.
선물받은 밥솥과 주워 온 책장, 집은 기혼자 기숙사. 그렇게 시작한 나는 지금도 비슷하게 살고 있다. 쇼핑 없이.
큰아이가 다섯 살이었던 2002년에 나는 ‘항 인지질 항체증후군’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면역 체계가 무너지는 병으로 치료 수단은 없고 심해지면 혈액이 굳을 거라고 했다.
친정으로 가서 자리보전하고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갈 때 가더라도 행복하게 살다가 후회 없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대전으로 내려왔고,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대전에서 나는 ‘한밭레츠’라는 공동체를 만났다. 한밭레츠는 지역 화폐 운동을 하는 단체이다.
쓰지 않는 물건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면 공동체 안에서만 통용되는 화폐가 적립되고, 그 화폐로 다른 회원의 물건과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다.
이처럼 물물교환과 품앗이로 유지되는 한밭레츠는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삶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먼저 한밭레츠에 있는지 확인하고 내가 쓰지 않는 물건도 한밭레츠에 보내곤 했다.
그렇게 얻은 물건은 물건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물건에 담긴 다른 사람의 기억,
물건을 받으면서 그 주인과 차 한잔 나누며 맺은 인연. 연고 없이 대전에 내려온 우리 가족은 그렇게 아껴 쓰는 동시에 친구들도 만들어갔다.
한동안 진짜 시골에서 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지만 대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동네 농사를 거들었다.
포도 농사를 도우면 포도가 생겼고 고추밭에 나가면 고추가 생겼다. 쌀이나 고기, 달걀처럼 돈 주고 사야만 하는 먹거리는 생협을 이용했다.
집을 구하지 못해 다시 도시로 나온 다음에도 우리 가족은 마당이 있는 집에 세 들어 텃밭을 일구었다.
오이, 가지, 고추, 쌈 채소…. 별것 아닌 농사지만 이웃과 함께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쪽을 심어 마당에서 염색한 스카프가 아마 천 장도 넘을 것이다.
이제 중학생인 우리 아이들은 옷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브랜드에는 관심이 없다.
새 옷이 생기면 “이건 어떤 형이 입던 거야?”라고 당연하게 묻는다. 남편과 나도 새 옷처럼, 없어도 살 수 있는 물건은 사지 않는다.
하지만 동네 가게에서 1~2만 원짜리 예쁜 티셔츠를 발견하면 가끔 산다.
대형 상가에 나가면 더 싸게 살 수 있는 옷들이지만 동네 가게들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아이들에게 과자나 아이스크림도 사준다.
이런 삶이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백화점에 가서 30만 원짜리 옷을 사지 못해도 동네 친구들에게 5천 원짜리 밥 한 끼쯤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내 삶이 행복하다.
그 밥 한 끼가 비싼 옷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언니가 쓰던 이불을 뜯어 목화솜을 새로 틀어 만든 나의 이부자리가 포근하다.
나는 소비의 유혹에서 벗어나면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라, 가전제품이 고장 나서 바꾼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새집으로 이사 가니까, 더 좋은 모델이 나와서, 한참 더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더 좋은 걸 갖고 싶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
내 친구들은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허덕이며 산다.
아이들 사교육비에 넓은 아파트를 사면서 받은 대출, 대형 승용차 유지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쇼핑으로 삶에 여유가 없다.
나는 내 삶의 질은 대한민국 1% 안에 든다고 믿는다.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아 남은 생활비로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기도 한다.
10년이 지나면 우리 아이 친구들이 입던 수십만 원짜리 비싼 파카는 어디에 있는지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철 따라 올랐던 제주도 오름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고연_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한밭레츠와 민들레의료생협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새로운 인생에 눈을 떴습니다.
지역 공동체 운동을 엿보고 싶은 분은 언제든 대전으로 놀러 오시라고요. 따뜻한 차 한잔 준비해놓고 기다리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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