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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너무 환~~~하네요*_*

나의 이야기

by ^^지니 2013. 10. 2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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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아시는 분은 아실것 같고...

이미 예상을 하신분도 계실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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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통재라~~~~

너무 슬프게도 줄넘기를

10월 19일부터

흑 흑 흑

중단하였답니다.

10월 11일부터 시작하였으니...

따아악 8일 하였네요...

억지로 끼워 맞춘

줄넘기 갯수는 800개정도 되겠군요...

저두 예전에

하루에 1,000개씩 줄넘기하고

10km마라톤도 완주한 경력이 있답니다.

근데..

정말 너무 운동을 안하다보니..

아니 세월이 정말 저를 기다려 주지를 않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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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무릅이 아파서

온 몸의 온 살들이 너무 아파서

거의 일상생활을 못할지경이랍니다.

오늘 겨우 일어나 울 옆지기따라서

부항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금 움직여 보았습니다.

학교운동장의 은행나무가

어찌나 환하게 보이던지...

운동을 계속하지 못하였던 제맘의 슬픔이

은행나무를 보면서

휘리릭 다~~날아가버렸답니다.

 

 

 

 

 

 

 

아이들이 하교하기전에

씨름을 하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오늘 6학년인 민수는 졸업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물론 인솔교사는 담임선생님이시죠~~

근데 졸업생이 민수 혼자라는 사실~~~

그럼??

ㅎㅎㅎ

선생님과 민수 따아악 두사람이 수학여행을 떠나거랍니다.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그러면 졸업앨범은...

졸업식은....

졸업식에서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상장들은

다 어찌되는지...

학교장상, 동창회장상, 부항면장상, 교육감상.... 등등

각 학교에 배정된 기본적인 상들은...

그럼 모두 민수 차지???

점점더 기대가 되는걸요~~

부항초등학교 졸업식~~~

나중에

지니가 꼬오옥 졸업식에 다녀와서

보고 드릴께요

 

 

 

부항초등학교 마당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세그루있고,

그리고 아주 커다란 느티나무가 두그루있답니다.

은행나무의 화려함도 좋았지만

느티나무의 떨어진 낙엽도

...

정말 좋았습니다.

 

 

 

 

 

 

 

낼은 비닐봉투를 가지고 가서

느티나무의 낙엽을 한봉투 쓸어담아와서

한번 태워보고싶습니다.

울 옆지기 온천지에 낙엽인데

무슨비닐봉투를 가지고 와서 담느냐고 타박이지만...

느티나무의 낙엽냄새는

뭔가 다를것 같아요

어쩌면 커피콩볶는 냄새가 날지도 모르잖아요.

예전에 강원도 소쩍새마을에서

그곳에도 마당에 아주큰 은행나무가 있었답니다.

낙엽태우는 냄새가 맡고 싶어서

마당의 낙엽을 주섬주섬 쓸어모아

신문지 가져다 불을 붙이고서

그곳아이들과 불을 쪼이면서 낙엽냄새 흠뻑맡고 있다가

어디선가 바람처럼 소화기들고 날아온 울 옆지기

벼락천둥치는 소리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데리고 무슨일이냐고 하면서...

혹시라도 불붙이는거 따라하면 어쩌냐고 하면서...

눈물 쏘오옥 빠지게 혼났던일이

또 생각이 납니다...

혼나는게 어찌나 서럽던지

한참을 엉엉 울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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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님의 낙엽을 태우며 수필을 오랫만에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좋은데요~~~

같이 감상하시죠~~~

 

낙엽을 태우며 / 이 효 석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 새 날아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굴뚝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낸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거들떠 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없는 그 넓은 잎은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히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족족 그 뒷시중을 해야 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엣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자욱해진다.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리 속에 띄운다.

음영과 윤택과 색체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타 버린 낙엽의 재를

 -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 땅 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다.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에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

얼굴을 붉게 태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 태곳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나는 새삼스럽게 마음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좀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라, 늘 들어가는 집안의 목욕실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사람은 물에서 나서 결국 물 속에서 천국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물과 불, 이 두 가지 속에 생활은 요약된다.

시절의 의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다.

어느 시절이나 다 같은 것이기는 하나, 가을부터의 절기가 가장 생활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의 원소의 즐거운 인상 위에 서기 때문이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피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코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은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 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이를 세우고 색전등을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이를 시작해 볼까하고 계획도 해 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책상 앞에 붙은 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 새 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멸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에 창조적,

생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 가는 가을, 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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